2011/05/0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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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 ![]()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민음사 |
과거형과 가정형으로 환기되는 현재. 이 소설이 가진 아련하고 담담한 분위기를 표현하기에 캐리 멀리건은 최고의 캐스팅이 아니었을까. 번역자도 꼽고 있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담과 캐시가 Never let me go라는 음악에 관한 해석차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캐시가 배게를 끌어 안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 그런데 영화에서는 바꾸어 놓은 것일까?
방대한 경작지가 펼쳐진 곳이었다. 두 겹의 철망으로 된 담장 때문에 밭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수킬로미터에 걸쳐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라고는 담장과 내 앞에 있는 서너 그루의 나무들뿐이었다. 그 철망으로 된 담장에, 특히 낮은 쪽 철망에 각종 쓰레기들이 걸려있었다. 마치 해변에 잡동사니가 밀려와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바람에 실려 수십 미터를 날아와 그 나무들에, 두 줄의 철망에 이른 것이 분명했다. 나뭇가지에도 깨진 플라스틱 판과 낡은 가방 조각들이 걸려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거기에 서서 그 기묘한 잡동사니들을 바라보며, 텅 빈 들판에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환상에 가까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요컨데 그곳은 노퍼크였고 토미를 잃은 지 겨우 두어 주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머릿 속에서는 그 잡동사니들, 나뭇가지에 걸린 플라스틱 조각, 해안선 같은 철망을 따라 걸려 있는 기묘한 물건들이 떠돌고 있었다. 나는 반쯤 눈을 감고 상상했다. 어린 시절 이후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이 곳에 모여 있다고, 이 앞에 이렇게 서서 가만히 기다리면 들판을 지나 저 멀리 지평선에서 하나의 얼굴이 조그맣게 떠올라 점점 커져서 이윽고 그것이 토미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리라고, 이윽고 토미가 손을 흔들고, 어쩌면 나를 소리쳐 부를지도 모른다고. 이 환상은 그 이상으로 진전되지는 않았다. 그 이상 진전시킬 수가 없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흐느끼지도, 자제력을 잃지도 않았다. 다만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차로 돌아가 가야 할 곳을 향해 출발했을 뿐이다. (392-393)
2011/05/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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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시절 - ![]() 공선옥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밭을 매다가 막녀가 낄낄거리며, 닝꽁닝꽁닝꽁니잉, 했다.
"뭣이여?"
"무수굴성님, 칡낭구 가지 새로 내려오는 거무가 닝꽁닝꽁닝꽁니잉, 안허요이?"
"자네 집 밭에 거무는 닝꽁닝꽁닝꽁니잉 헌가? 우리집 밭에 거무는 지꾸지꾸지꾸지잉 허그만."
그 옆에서 깨밭을 매던 살푸쟁이댁 김채선이,
"아이고 성님들도 차암, 소리 안 내는 것이 소리는 더 많다고 안그럽디여?"
"자네 말이 옮네. 소리내는 거시(지렁이)는 띠룽띠룽띠룽, 띠루룽 한 가지 소리지마는 소리 안 내는 것들이 뭔 소리를 가졌는지 우리가 얼매나 알겄는가이?"
우리는 적막한 속에서 소리 없는 것들의 온갖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없다고 해서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 것들의 소리다. 그래서 가슴 한쪽이 먹먹해왔다. 꼭 우리들 같아서. 우리도 소리를 안 내고 살 뿐이지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닌데도 세상은 땅 파먹고 사는 아낙들은 소리가 아예 없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무슨 소리라도 낼라치면 무식한 아낙네가 뭣을 아느냐는 투였다. 그래도 우리는 울지 않았다. 우리 울음 알아주는 데도 아닌 데서 울면 우리만 설워지니 울지 않았다. 어쩌다 울 때도 놀 때나 울지, 일할 때는 힘이 들어 울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울면, 닝꽁닝꽁닝꽁, 지꾸지꾸지잉, 띠룽띠룽띠루룽, 하는 것들이 우리 울음에 묻힐까봐 울지 않았다.(79-80)
"어이, 한사코 모란꽃맹이로 이삐고 존 것만 생각허소이. 내가 얏닐곱살 때 울 오무니가 애기를 낳다가 돌아가싰거등. 할머이가 방문을 탁 열고 나옴서, 아이, 느그 어매 죽어부렀다, 허등만. 죽는 것이 뭣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슬프제이. 막연허게 슬픈게 말레(마루)에 우두근히 앉아서 다무락 옆에 모란꽃 벙그러진 것만 가만히 보고 앉았어. 모란꽃이 하도 이뻐서 그것 보니라고 내가 어매 죽은 것을 깜빡 잊어묵었어. 그러니, 그 때 모란꽃같이 이삔 것이 한 태기도 없었으면 얼매나 더 설워이? 그렁게 자네도 맘이 힘들수록에 한사코 모란꽃맹이로 이삔 것만 생각허소이."(192-193)
맑고 예쁜 사람들이 한 가득 나오는 슬픈 소설인데, 이 성님들 맨키로 글이 꽃을 품고 있어서인지, 이쁜 것이 아른 거려서 눈물은 나지 않았다. "돈 좀 벌겠다는데"라는 말이 땅 파서 풀 길러서 사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할 때, 그 앞에서 어깃장을 놓고 모처럼 제 소리를 마음껏 질러보며 지금이 "꽃 같은 시절"이라고 말하는 할머니들 이야기이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세계, 꽃과 인간의 세계가 서로 침투해서 고생스러운 시절 속에 '사람 꽃' 피우는 이야기이다.
며칠 전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행했던 어떤 이가 "요즘 무슨 낙으로 사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꽃 구경 하는 낙으로 산다, 요즘 내 팔자가 참 좋다란 생각을 하루에 한 번씩 한다고 답했는데, 공선옥의 글을 읽고 나니, 나는 그 꽃 속에서 무엇을 봤나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말>이 좋아서, 여기에 옮긴다.
2011년 1월 13일, 주민들이 군청을 상대로 법원에 낸 '공장 업종 변경 승인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항소심에서 법원은 주민들의 항소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쇄석기를 불법가동하게 된 경위에 참작한 부분이 있는 점, 공장을 불법가동하게 된 전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장을 적법하게 운영할 기회를 영구히 박탈하는 것은 지나친 것으로 보이고 사전 환경성검토 등의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저감방안 등을 성실히 이행하며 공장을 운영하게 하는 것이 공익에도 부합할 것으로 보이는 등에 비추어보면 원고(주민)들이 주장하는 사유만으로는 이 사건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내 글은 다 끝났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애초에 불법으로 출발한 공장은 여전히 불법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고, 불법이 아니더라도 소음과 먼지 때문에 견디기 힘든 공장을 '불법공장'이기 때문에 더더욱 돌아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민들의 '합법투쟁'은 그러나 지금, 실패로 끝났다. 그러니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된다.
불법영업을 하고 있음에도, 앞으로 법을 지키게 해서 공장운영을 하게 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며 주민들의 호소를 무시한 판결문에 나오는 그 '공익'은 과연 누구를 위한 공익인가. 공정하지 않은 나라의 힘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죄다 자기들이 차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말들조차 자기들이 먼저 잽싸게 가져다 써버린다. 멀쩡했던 '공익'이란 말은 그렇게 욕을 먹는다. '쇄석기를 설치하지 말란 말이야'라고 외치던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애먼 공익이만 뭐 돼부렀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햇빛이 쏟아지거나 군청 앞 노상에 나 앉아 밥을 '끓여'먹어가며 '디모'한다고 쭈그려앉아 있던 그 순한 '조선 어미 아비'들의 눈빛을, 표정을, 말투를, 그들이 내게 나줘주던 밥을. '우리는 디모를 요렇게 허요'라고 말하며 자신도 쑥스러웠던지 배시시 웃던 그 미소를. 세상은 그 순한 사람들이 원래의 성정대로 순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은 돈벌이의 욕망 앞에 사납게 찢긴다. 원래 그렇게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조용히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은 간단히 무시된다.
이 글은 말하자면, 순하고 약한 사람들의 순하고 약한 '항거'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순하고 약한 사람들의 작은 항거들이 조용히, 그리고 간단히 무시되고 있을까. 지금 세상이 난리인 것은, 작은 항거들 때문이 아니라 그 작은 항거들이 '조용히' 무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잘난 '공익'을 위하여! 너무도 조용히! 너무도 간단히! (2011년 4월 공선옥)
2011/04/26 17:24
영화는 두 시간이 지나는 동안, 오 년을 함께 산 부부가 왜 헤어지게 됐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쥬스 마실래, 커피 마실래란 말 끝에 따라 붙은 "그 사람한테 갈래", 이 커플은 어떻게 차분하고 태연하게 이별의 수순을 밟아가는지 2시간 동안 그 풍경을 보여줄 뿐, 이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짐을 싸고, 커피를 마시고, 파스타를 만드는 동안 이들이 보여주는 궁합이 썩 좋아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두 시간을, 빗소리에 잠겨, 우물같이 공기도 목소리도 고인 이 집에서,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영화 속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면 간절히 해가 나기를 기다리게 된다. 어느 누구가 장마비같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그 궁합이 너무 오랜 비를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 커플의 비극은 차분함과 편안함 때문에 시작된다. 관계의 시작은 <비밀의 화원>같은 배경 속에서 숨바꼭질하다가 찾아든 서재의 오래된 쇼파에서 아이의 서늘한 내면을 덮어주는 편안한 낮잠을 자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백년간 내린 비로 마음에 핀 곰팡이와 싸우는 <백년동안의 고독>의 도입부처럼 끝난 것이다.






